인도여행 India

(3)아우랑 가바드

kim215 2014. 9. 28. 12:29

아우랑가바드...2005. 10. 3.

열차 안은 매우 혼잡했다.

그러나 침대석이라 우리들만의 공간을 있어 처음부터 누울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배낭을 열쇠로 침대에 고정하고 여권과 돈은 가슴에 품었다.

불편해도 누우니 금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끄러운 기계음에 눈을 떴는데 열차는 아직도 달리고 있었다.

열차 안은 에어콘을 밤새 틀었는지 꽤나 싸늘했고, 차창 밖은 아직도 어둠이 밝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간이역의 초췌한 풍경들은 열차의 속력으로 오버랩되면서 또렷하게 다가왔다.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짜이, 짜이를 외치며 차()를 팔기 위해 속도를 줄여 들어오는 열차에 올라타는 사람들이 있다.

위험할 것 같은데도 그들의 일상이어서 인지 너무도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아우랑가바드역이 가까워지자 차창 밖 풍경은 조금씩 농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옥수수 밭 사이로 소와 염소를 몰고 가는 어린아이들, 땔감으로 사용한다는,

담벼락에 붙여 말리는 소의 배설물, 관목류 옆에서 똥을 누고 있는 아이들

낡은 굴뚝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  지금껏 지나친 여느 지역과는 사뭇 다른,

제법 생기가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아침 7, 아우랑가바드역에 도착했다.

낙서로 도배된 역사(驛舍)빠져 나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철로를 건너니

조용한 시골 풍경이 다가왔다.

공기도 상쾌하고, 거리도 사람들이 별로 붐비지 않았다.

뭄바이의 복잡함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천천히 역을 빠져나오는데 호객꾼이 다가왔다.

여행을 하다보면 귀찮은 것이 호객꾼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머뭇거리다가 어차피 일정을 잡아야 하기에 안내하라고 했다.

숙소도 가서 보고 선택하라고 할 정도로 호객꾼은 착해 보이고 아주 적극적이었다.

생각보다 여행 일정을 잡는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짚차를 이용하기로 했고, 숙소도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깨끗한 호텔로 정했다.

 

오랜 시간 기차를 탔더니 몸이 피곤했다.

지나친 피로는 여행에서 모든 걸 포기하게 한다.

휴식이 필요했다. 먼저 호텔을 예약하고 샤워를 했다.

배가 고파오자 식당을 찾았다. 작은 동네에서 식당은 몇 군데 없었다.

조금 커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지저분한 게 배고픔까지 사라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먹는 것인데 별 문제가 없겠지.” 하며 그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남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메뉴판은 새까맣게 손때가 묻어있고 작은 글씨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조그만 식당에 무슨 음식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짜증부터 났다.

메뉴를 보면 아는 음식이 있나, 그래도 뭔가를 시켜야 하는데 팀원들도 서로 눈치만 봤다.

할 수 없이 메뉴판의 음식이름을 손으로 가리키며 - 안 도라 치킨.” 하고 시켰다.

내가 시키긴 했어도 어떤 맛인지 나는 모른다.

그런데도 다들 같은 걸로 하자고 그랬다.

인도 음식에 대한 지식이 없는 터라 어느 누가 선뜻 바꿀 수가 없었을 것이다.

찬도라 치킨이 나왔다.

커리맛이 아주 강했지만 우리 입맛에 그런대로 잘 맞았다.

사람 사는 게 별반 차이가 없구나, 생각했다.

아우랑가바드는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과 매연을 뿜어대는

낡은 자동차들이 유독 많아서 거리가 더 혼잡했다.

그래도 잘 돌아간다.

인도에서니까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오전 일정은 휴식의 시간으로, 오후는 장대한 힌두조각의 결정체인 엘로라 석굴로 잡았다.

시내를 빠져 나오자 허름한 집들과 소떼를 몰고 가는 촌로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도로는 중간 중간 포장이 훼손되어 자동차의 덜컹거림이 심했다.

 

마을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의 구조가 왕복 2차선으로 좁고, 포장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지만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린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러나 계속되는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아직 적응이 덜되었는지

팀원들 모두가 조그만 일에도 쉽게 짜증을 냈다.

인도인들의노프라블럼정서와 다른 우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인도인들은 화를 잘 내지 않는 듯 했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이라는 식이다. 신분제도에서 오는 현실 만족인지,

아니면 자기의 삶이 미리 정해졌다는 종교에서 오는 인생에 대한 체념 같은 건지는 모르겠다.

엘로라로 가는 동안 모두가 깊은 잠에 빠졌다.

짚차의 덜컹거림에도 서로의 어깨를 기댄 체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운전기사가 지루해서인지 백밀러를 통해 가끔 우리를 쳐다보기도 했다.

콧수염을 하고, 얼굴이 아주 검은 운전기사는 오랜 시간을 운전해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밤새 운전을 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별로 없는데도

무슨 힘으로 저렇게 버티는지 처음에는 우리 모두가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운전하는 중간 중간에 껌을 씹듯 계속 입을 놀리는 마약 성분의 잎담배가 있었다.

그 마약의 힘으로 피곤함을 달래고 있었다.

기사가 목적지에 거의 왔음을 알려주었다.

겨우 눈을 뜨고 멍하니 차창 밖을 훑어보았다.

대지는 한 여름날 소나기를 기다리는 날처럼 무더운 열기가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어느 덧 짚차는 힌두교 석굴사원과 불교 석굴사원이 있는 엘로라에 도착했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유산답게 엘로라는 웅장했다.

암반을 파 들어가 탑과 불상을 만들고, 어두운 공간은 구멍을 내어 햇빛을 끌어들였다.

사원 전체가 암반으로 이어져 있고 하나하나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신이 만들어낸 것이지, 사람이 이렇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야.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더위에 지쳐 나무그늘을 찾아 쉬고 있는데 잡상인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귀찮게 굴었다.

결국 조잡한 조각품 한 개를 사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얼마 후 우리는 작은 타즈마흘로 향했다.

작은 타즈마흘은 이미 저녁햇살을 받아, 퇴색한 콘크리트 벤치에서 쉬고 있는

인도여인의 찌푸린 미간의 주름처럼 명암이 또렷이 구분되고 있었다.

관람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분주했다.

우리도 서둘러 한 바퀴를 대충 둘러보고, 출입구의 좌측을 돌아 나오는데 한 인도인 가족을 만났다.

사진 같이 찍을까요.”

서툰 영어지만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하자 그 남자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아마 영어로 이해하기보다 손짓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자기 남편이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게 자랑스러운지 줄곧 웃으며 입이 귀에 붙었다.

처제와 아들, 부부는 모두가 깡마른 체구로 가난함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능청스럽지만 솔직하게 다가가자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내가 고맙다며 준비해간 볼펜을 하나 건네주자,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며 구겨진 종이를 꺼내어 내게 주소를 적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작은 타즈마흘을 빠져 나오는데 구경 온 수십 명의 학생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힌두어로 인사를 한다.

나마스떼(안녕하세요)”

나마스떼(안녕하세요)” 나 역시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따라했다.

그러자 그들을 사진을 찍어달라고 손짓을 한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학생들 틈에 자리를 차지하고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밝은 표정의 인도 아이들처럼 우리도 밝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학생들과 하나가 되어

나마스떼를 외치고 있었다. 셔터소리를 듣지 못했다.

 

가난해 보이는 인도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과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