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소나마르
Sonamarg of Valley................ 2005. 10. 8.
달 호수의 아침은 애욕의 여인처럼 매혹적이었다.
운무가 살짝 가려진 달 호수가 아침햇살에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듯 앞에서부터 하나씩 보여주는 광경은
은밀한 아름다움이었다.
그저 “아- ” 하는 감탄사가 먼저 나올 뿐이다.
그것도 잠깐 햇살이 강해지며 금방 사라졌다.
오늘 일정은 산악 트랙킹이다.
아침 8시, 짚차를 타고 소나마르(Sonamarg)로 향했다.
먼지를 내며 달리는 짚차는 검문소마다 멈춰서야 했다.
지루함을 달래려는 듯한 형식적인 군인들의 검문인데도
운전기사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길을 따라 1시간여를 달리니 피곤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좁은 흙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돌담이...
우리는 그 돌담에 걸터앉았다.
주위의 산들의 조화를 이룬 계곡을 가로 질러 통나무 다리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사람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집시들만 다닌다고 해서 “집시의 다리”라고 했다.
아낙네들이 땔감을 머리에 이고 흔들거리는 집시의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우리는 아낙네들이 다리를 건너오자 그 쪽으로 갔다.
땔감하고 돌아오는 아낙들도 우리를 보자 머리에 이고 있는 땔감을 내려놓고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들었다.
아낙들은 카메라를 대자 수줍어하면서도 순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주근깨가 많은 얼굴에, 머리에는 사리를.... 내게 보이는 그들의 손, 발, 얼굴은
삶의 거친 모습이었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거친 얼굴이지만 카메라 앵글 속에 잡힌 그들의 미소는 우리보다 밝고 행복해 보였다.
차 옆에는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과 운전기사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콧수염을 한 군인이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며 포즈를 취해준다.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짚차는 목적지를 향해 다시 뿌연 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우리가 이용하는 도로는 매우 주요한 기능을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관리 상태는 아주 엉망이었다.
도로가 유실되어 공사를 하는 곳도 여러 군데 있었다.
도로 폭 보다 좁은 교량도 있는가 하면,
미군들이 사용하던 가설철재조립교를 교량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도로보수공사는 대부분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하는 시간보다 앉아서 쉬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은 인부들은 일은 하지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만 초점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파키스탄을 넘나드는 도로이다 보니 인부들 사이로 뿌연 먼지를 내며 지나가는
“goods carier"라고 쓴 화려한 트럭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3시간여 만에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는 산봉우리가 펼쳐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승마장에 있는 목동들이 일제히 달려와 운전기사를 애워쌌다.
자기 말에 손님을 태우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우 머치”로 흥정을 시작했다.
1인당 300루피를 달라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중에 차 속에서 이미 운전기사와 우리는 가격을 얘기한 것이 있었다.
정부에서 정한 정찰가격이라 깎을 수가 없다고 했다.
외국인을 봉으로 아는 인도가 아닌가?
관광지 입장료도 외국인은 자기들보다 3-4배는 비싸게 받는다.
릭샤, 택시 요금도 외국인만 보면 바가지를 씌우려 하는 게 이들이 일상이다.
몇 일 동안에 느낀 짧은 지식이지만...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흥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냥 걸어간다고 제스처를 하며 100여 미터쯤 산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10여명의 목동이 말을 타고 달려와 우리 주위를 둘러쌌다.
다시 흥정을 하자는 의도였다.
내가 걸어간다고 했기에 대부분 나에게 와서 치근거렸다.
8킬로미터를 왕복하는데 정찰가격 300루피가 150루피까지 떨어진 것이다.
인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를 태울 말은 조랑말과 비슷하다.
목동들은 13세 전후였다. 간단한 영어는 할 줄 알았다.
각자 말에 올라타고는 목도의 안내에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말은 순해서 우리를 적당한 속도로 히말라야 산맥의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안내했다.
내가 고삐를 흔들며 속도를 내려 했지만 말들은 관광에 길들여졌는지 속도의 변화는 별로 없었다.
네 마리의 말이 서로 붙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어갔다.
선두의 말이 빨리 가면 뒤따르는 말들도 그 속도로 따라 갔다.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을 따라 말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외국인보다는 상류층으로 보이는 인도인들이 더 많았다.
계곡을 만들고 있는 산 정상에는 회색빛 눈이 쌓여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것은 능선을 따라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침엽수들이었다. 말에서 내렸다.
걸으며 경치를 보기로 하고 말과 목동을 먼저 올려 보냈다.
계곡을 따라 걸어가는 우리는 어느 덧 산 능선의 풍광에 빠져들었다.
한 동안 멍하니 카메라 셔터만 계속 눌러댔다.
1시간쯤 걸었을까. 배가 고파왔다.
점심은 스완 하우스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이다.
오래된 듯한 플라스틱 도시락을 열자 그 안에는 샌드위치 1개, 감자 구운 것, 삶은 달걀이 전부였다.
도시락 한 개를 목동들에게 건네 주었다.
도시락 세 개와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로 점심을 대신했다.
배낭여행을 할 때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보온병을 꼭 준비한다.
움직이는 커피제조기로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목동들은 우리가 준 점심을 먹지 않았다.
“라마단”이라는 이슬람의 금식일이라는 이유이다.
금식일은 어려운 사람과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라고 하는데, 해가 질 때까지 금식을 한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좋은 교리가 있고, 풍습이 존재하는데도 현실은 모순된 삶을 살아가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또한 파키스탄과 국경이어서 계속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들과 말들이 한데 어우러져 쉬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간 말들도 습관적으로 그 곳에 멈춰 섰다.
조립식 판넬로 지은 몇 동의 집에서는 조잡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산중턱 목적지까지는 30분을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다.
경사가 급하고 말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힘들어서 포기할까, 생각하다가도 나중에 후회할 거야, 하는 자기 최면에 경사로를 따라 나는 걸었다.
급경사라 매우 힘들었다. 거친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서로의 간격은 점점 벌어졌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흩어져있는 말들은 나의 시선에서 많이 멀어졌다.
혼자 걸어서인지 더 힘들었다.
겨우 숨을 헐떡이며 눈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산중턱에 있는 얼음지붕 아래에 도착했다.
포근한 날씨로 회색빛 얼음벽에서는 계속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등허리에도 땀이 제법 흥건했다.
조금 넙적한 바위를 골라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멀리에서 아직도 일행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상체의 움직임은 거의 없고 시선을 땅바닥으로 고정한 채 오른손을 무릎에 대고 힘든 발걸음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줌렌즈로 당겨 사진을 찍어주었다.
도착한 시간이 다르다 보니 앉아 쉬는 것도 지루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두 사람은 한기를 느낄 시간이 한참 넘었다.
나 역시 춥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미안했지만 먼저 내려간다는 말을 하고는 넙적한 돌맹이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내려오는 길은 매우 미끄러웠다. 말이 있는데 까지 내려오자 관광객들이 하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가 산에 가려지는 오후의 날씨는 온도를 몇 도는 떨어뜨려 우리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했다.
말에 올라탔다. 그런데 내가 탄 말이 갑자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작은데 제일 무거운 나를 하루 종일 태우고 다니고 있으니....
학습효과가 있어서인지 아침보다 말 타는 게 모두 여유가 있었다.
한 손을 놓기도 하고, 둘이 붙어서 같이 가기도 했다.
말 위에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달리기도 했다.
하루종일 말과 함께 보냈다.
마지막 언덕길에 이르자 말이 힘에 부쳤는지 고개를 상하로 흔들며 뚜벅뚜벅 힘겹게 걸어간다.
뒤따라오던 말들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언덕길을 피해 길이 아닌 아래쪽으로만 자꾸 가려 했다.
목동들이 고삐를 잡고 방향을 잡아 주었다.
짚차가 있는 곳에 도착할 무렵이 되자 목동들이 팁 100루피를 달라고 금액까지 정해버린다.
또 바가지 모드가 발동되는구나, 싶어 못들은 척 했다.
이들이 얘기대로라면 팁이 아니라 일당인 셈이다.
일주일간 쌓은 내공도 있는데 그냥 줄 우리가 아니었다.
계속 모른척하고 딴청을 피우자 부르는 금액이 자꾸 떨어졌다.
결국 우리는 각자에게 30루피씩 주고 그들과 헤어졌다.
너무 적은 건 아닌지, 하고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도 가는 곳마다 그러니 우리도 적응이 되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라고 미안한 마음에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자동차 라이트를 켜고서야 달 호수에 도착했다.
달 호수의 아름다운 저녁 노을 풍경에 이슬람교의 기도소리가 혼합되니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보트하우스의 식탁에 모였다.
저녁식사는 양고기가 나왔다.
카레향과 조금 짠 맛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쇠고기 장조림과 비슷했다.
안주에 따라오는 킹피셔 맥주를 3병 시켰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예외 없이 건배로 오늘 하루를 무사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 각자의 신에게 감사를 올렸다.
완전한 어둠이 되었다.
건너편 하우스보트에 전기불이 들어오고, 호수에 떠있는 시카라도 별로 눈에 띄지않았다.
피곤하다며 둘은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다.
맥주 1병과 두 사람만이 남았다.
어색했는지 서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맥주만 마셨다.
여행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나의 엠피쓰리는 이런 어색한 시간에 적절한 역할을 해준다.
조그만 스피커에서 “묻어버린 아픔”이 흘러나왔다.
어색함을 건배로 얼버무리며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 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런 사랑 원하지 않아
바라만 봐도 괜히 그냥 좋은
그런 사랑이 나는 좋아
변한 건 세상이라지만
우리 사랑 이대로 간직하면
먼 훗날 함께 마주앉아 우리
얘기 할 수 있으면 좋아
........................”
노래의 마지막 반주가 흐려지면서 노래가 끝나가자 둘은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깊지 않은 밤인데도 호수 주변에 불빛들은 하나 둘 꺼져가더니 발전기 엔진소리에 몇 개가 다시 켜졌다.
얼마 후 또 다시 호수의 어둠 속으로 꺼져갔다.
아름다운 달 호수의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