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30시간 ................ 2005. 10. 19.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도 슬픈 표정 한번 짓지 않는 버닝가트에서의 인도인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지금도 아른거리는 버닝가트의 풍경 때문에 좀처럼 다음 일정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여행은 이동과 느낌의 파노라마다.
어디가 좋다고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면 그건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여행자는 한 곳에 집착할 수가 없다.
그리고 편안함을 그리워해서도 안 된다.
언제 어디서나 떠날 준비가 되어야하고 낯선 곳을 동경해야 한다.
30시간이나 걸리는 뭄바이행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거리의 준비다.
잠은 피곤하면 불편해도 알아서 들겠지만,
배고픔은 여행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기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과일과 빵을 준비하기로 하고 리어카 행상에서 바나나, 밀감, 사과를 샀다.
토마토는 과일 행상에게는 없었다.
주변의 채소행상에 고추와 함께 진열되어 확실하게 채소로 구분되고 있었다.
그리고 공항가는 길에 “bread of life"에서 빵을 넉넉하게 샀다.
같은 골목에서의 삶인데도 “bread of life" 는 언제나 분주하고 활기차며 행복에 겨운 풍경이어서
평범한 인도인의 삶과는 확연히 구분되어지는,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출발 시간보다 일찍 바라나시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의 혼잡함은 며칠전과 다를 바 없었다.
출발시간까지 외국인전용 휴게실에서 기다렸다.
휴게실에는 상류층으로 보이는 인도인들과 외국인이 함께 있었다.
그 중에 한 인도인이 나를 보더니 인도 북부지방에서 왔느냐고? 물어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인도인들이 헷갈릴 만하다.
그 얼굴이나 내 얼굴이나 색깔이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말을 거의 하지 않으니 그들의 판단이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긴장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한바탕 웃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외국인이라서인지 자꾸만 우리 쪽으로 바라보며 호기심을 갖는 듯 했다.
특히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를 자주 쳐다봤다.
몇 번 눈을 마주 치더니 그는 비교적 겸손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영어로 말을 하는데도 더듬는 게 심해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군인은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다.
그 노력에 조금씩 통하기 시작했고, 기차를 함께 타고가게 되는 동행자가 되었다.
오후 4시... 30시간의 기차여행이 시작되었다.
군인의 도움으로 우리는 객차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좌석은 둘씩 떨어진 곳을 배정 받았다.
배낭은 잠이 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은 터라 지레 겁부터 먹고는
열쇠로 의자에 잠그고 짐을 정리했다.
짐 정리가 끝날 무렵 커텐 사이로 보이는 창 밖에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군인이 보였다.
휴게소에 함께 있던 군인이 우리가 자리를 잘 찾았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생각하는 게 착하고 너무 고마웠다.
준비해간 열쇠고리를 그에게 선물을 했다.
배낭여행은 이런 매력때문에 한번 맛을 들이면 중독되어 자꾸만 떠나는 것 같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감동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자주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에게 진솔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차창 밖 풍경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어느 덧 열차의 형광등이 낮은 조도로 전부 켜졌다.
어두운 열차 안이 밝게 보이는 것만큼 창밖은 점점 어두워갔다.
스쳐지나가는 간이역의 어두운 불빛처럼 기차에서의 하루가 희미하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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