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풍경
눈을 뜨니 새벽 5시였다.
아직도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소리가 요란했다.
대부분의 침대칸은 커튼이 내려져 있고, 희미한 형광등만이 통로를 홀로 비추고 있었다.
천정에 달려 있는 선풍기는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계속 돌아간다.
미적거리다 일어나 앉아 커튼을 젖히고 MP3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기차의 속도로 바뀌는 창밖을 바라본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조덕배’의 ‘왜 세상은'이 감미롭게 들려온다.
왜 세상은 나를 저 바람 속으로 떠 밀어
버려놓고 웃고만 있을까
돌아보지 말라고 한건 미련 때문이 아니야
어둠속에 묻혀버린 내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어.
바람 부는 어둠속에서 너를 찾아 헤매겠지
끌어안은 너의 얼굴에 떨어져서 부서지는 내 눈물
언제 여기까지 왔냐고 하얀 손을 내게 내밀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돌아가자던 너의 몸짓에
아이처럼 한번 웃어봐 옛날처럼 딱 한번만
세월 속에 사라질 거야 미소처럼 돌아올 거야
열차는 간이역마다 계속 세웠다.
어둠이 걷히면서 다양한 인도의 농촌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목류 사이로 높이 자란 야자수가 띄엄띄엄 있고, 마을로 들어가는 모퉁이에는
형광등 가로등이 희미한 불빛으로 아침을 맞고 있었다.
관목류 뒤편에는 눈 비비고 일어나 볼일을 보는 어린 아이들의 분주한 모습도 보였다.
새벽이 아침으로 바뀌면서 배가 고파왔다.
열차를 탈 때 준비한 먹을거리는 이미 바닥이 났다.
아직도 많은 시간을 열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데 일용할 양식을 어떻게 구해야 하나?
간이역에서 잠깐 멈추는 2 ~ 3분 안에 사오는 수밖에 없었다.
간이역이 가까워 오는지 열차가 속력을 줄여가자 열차 안이 시끄럽기 시작했다.
역에는 먹을 것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 손에 물건을 들고 열차가 멈추는 곳으로 뛰어오는 사람은 위험스럽기까지 했다.
열차가 간이역에 완전히 세웠다.
미리 혼잡한 통로의 바깥쪽을 차지하고 있던 나는 잽싸게 열차에서 내렸다.
순식간에 역은 혼잡해졌다. 파는 것이라고 해봐야 기름에 튀긴 것, 카레가 섞인 밥,
인도의 전통차 짜이, 과일 정도지만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위생상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 바나나만을 10루피 주고 샀다.
네 명이 아침식사로 먹기에는 많이 부족한 양이었다.
바나나를 나눠 먹고는 다음 역을 기다렸다.
차창 밖 풍경이 여러 번 바뀌더니 열차는 규모가 조금 커 보이는 간이역에 세웠다.
무엇을 살지 정하지도 않았지만 사람들 틈에 끼어 기차에서 내렸다.
혼잡함 속에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먹거리는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곳에서 사는 것도 방법이다, 싶어 가보니 튀김을 팔고 있었다.
주저 없이 튀김을 종류별로 샀다.
어떤 맛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불필요하다할 정도로 여러 가지를 사는 까닭은 선택의 오류에서 오는
배고픔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열차에 오르기 전 주전자를 들고 짜이(커피와 비슷한 인도 차)를 팔고 있는 사람과 마주쳤다.
맛을 잘 모르기에 짜이는 두 잔만 샀다.
종이컵에 따라주는 짜이는 카푸치노 커피와 같이 연한 연두색을 띠었다.
짜이는 한 잔에 3루피 했다.
10루피를 주고 잔돈을 받으려 하는데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 안에서 지켜보던 일행들은 걱정이 되는 지 빨리 타라며 나를 불렀다.
짜이 장사꾼이 동작이 늦어질수록 열차의 마찰음은 점점 커졌다.
결국은 잔돈 4루피를 포기하고 급하게 열차에 올랐다.
짜이 장사꾼이 지폐를 오른손으로 흔들며 신호를 보냈지만 무슨 뜻인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30시간의 열차여행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지나쳐온 간이역의 숫자보다
더 다양한 인도의 생활상을 보았다.
그리고 인도의 보통 사람들의 애환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뭄바이역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되었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인디안 게이트 주변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이 밤은 꼭 기억하고 싶다.
그러나 어느덧 자정을 넘어 한국으로 돌아갈 오늘이 다가오고 있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인디안 게이트와 타즈마할 호텔의 조명이 더욱 밝게 느껴진다.
인도의 보통 사람들의 미래가 저 불빛처럼 밝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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